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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서 남주자!_책 리뷰

[페미니즘 도서] 레슨 인 케미스트리,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용기에 대하여/감상평/ 줄거리(스포X)

by 포포위 2023. 3. 12.

페미니스트로서의 감상평

당신이 서른이 넘었다면, 한때 큰 인기를 끌던 이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좋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에 깊은 관심을 갖고 때로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목소리 내어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내 머릿속에는 이 광고의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온다. 대부분의 변화가 그렇듯 세상이 옳다고, 평범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대세’에 No를 외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거세거나 사사로운 저항을 받는다. 내가 페미니즘에 의견을 내면 대체로 까다로운 사람, 미친 사람 혹은 부정적이고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처음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펼쳤을 때 나는 내가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이렇게 사랑하게 될 거라는 기대가 없었다.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과 페미니즘이 마치 반의어인 것처럼, 페미니스트들을 흘겨보는 세간의 이목에 대해 이렇게나 우아하게 반격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주말이 무척 즐거웠다. 재치 있고 당당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영화를 만나는 것은 늘 행복한 일이다.

소설&lt;래슨인케미스트리&gt;표지
지은이: 보니 가머스/ 보니가머스의 장편 소설 <레슨 인 케미스트리>

줄거리(스포X)

1950~60대가 배경이다. 2020년대를 살면서도 때로 비합리적인 성차별을 목격하는 나로서는 1960년대 여성들이 겪은 억울함을 상상할 수도 없다. 이야기를 아주 똑 부러진 어린아이 매들린과 매들린의 점심 도시락으로부터 시작한다. 비상한 머리를 가진 매들린은 TV프로그램에서 요리를 하는 엄마를 두었다. 매들린의 엄마는 요리실력이 아주 뛰어난데, 도시락에 늘 아이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를 넣는다. 여느 엄마들처럼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 ‘선생님에게 예의 있게 굴어’ 같은 메시지가 아니다. 어리지만 매우 똑똑하고 성숙한 딸아이와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메시지들이 매일 담긴다. 요리 쇼를 진행하지만 매들린의 엄마 엘리자베스는 유능한 화학자다. 그의 그 프로그램에는 원소명과 비커가 난무한다. 그의 프로그램은 요리쇼를 가장한 화학 강의랄까, 인생 명강이랄까 그 중간 어디쯤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UCLA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받던 엘리자베스는 담당교수에게 강간을 당하고도 되려 학교에서 쫓겨난다. 이곳저곳 밀리고 밀려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자리를 잡게 된 엘리자베스는 스스로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의 가치를 몰라준다, 캘빈 에번스만 제외하고. 캘빈 에번스 역시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박사지만 그는 노벨상 후보에도 오르고 과학 잡지 표지 모델을 할 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범상치 않은 첫 만남 그리고 더 기괴한 두 번째 만남을 통해 그들은 친구가 된다. 단순히 남녀 성적매력에 끌린 사이가 아닌, 서로의 지적 능력을 인정하고 학자로서 의견을 공유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진다. 엘리자베스를 존중하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당시의 남성들이 갖고 있던 시야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던 캘빈은 엘리자베스 몰래 그의 커리어를 도우려 물심양면으로 애쓴다. 당시 엘리자베스가 살아가던 사회도, 연구소도 여자에겐 끔찍하게 차별적이었다. 캘빈과 엘리자베스는 둘만의 아름다운 버블 속에 한동안 살아갈 수 있었다. 캘빈이 죽기 전까지. 아니, 정확히는 캘빈이 죽고 자신의 뱃속에 캘빈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가 알기 전까지.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경력이 남편의 성에 묻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아이는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는 끔찍한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현실과 빽빽 울어대는 신생아가 있을 뿐이다. 결혼하지 않은 임산부에게 지독하게 잔인했던 세상에서 엘리자베스는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살아나가려고 애쓴다.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편견에 냉철한 학자의 눈으로 “why not?”과 "No."를 포기 없이 읊조리는 엘리자베스의 용기는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를 미소 짓게 만든다.

결국 연구소의 일을 부당하게 잃고 원하지는 않았지만 생계를 위해 TV 요리쇼의 진행을 맡은 엘리자베스는 그곳에서도 역시 ‘여자에게 기대되는 마땅한 역할’을 거부하며 혁명에 가까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그의 프로그램을 보는 여성 시청자들이 자신의 가치를 깨닫도록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는다.

인간의 단어를 천 개쯤 배운 똑똑한 개 ‘여섯 시 삼십 분(그렇다, 개 이름이다)’과 더 똑 부러진 매들린은 엘리자베스를 지탱한다. 다행히 주변엔 몇몇 좋은 이웃과 친구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엘리자베스는 화학자가 아닌 요리쇼 진행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끔찍하게 여긴다.

수많은 여성 시청자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비춰준 엘리자베스는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까? 그것을 지켜보는 그 모든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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