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레이첼 클라크
- 출판
- 메이븐
- 출판일
- 2021.10.04
핸드폰만 들면 마음이 시끌시끌하다. SNS에도 유튜브에도 나보다 멋져 보이는 사람 천지다. 욜로는 가고 갓생이 유행이라더니, 다들 어디서 그런 열정과 에너지가 솟아나는지, 어디서 그런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얻는지 궁금해하다 보면 내 삶은 한층 더 초라해져 있다. 호기롭게 블로그와 유튜브를 시작한 올 해의 채 반이 지나기도 전에 나는 지쳤다. 지친 이유는 블로그나 유튜브가 인기가 없어서도 아니요, 그것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버거워서도 아니다. 목적 없이 부유하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보다 훨씬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이걸 함으로써 기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소통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자꾸 캐묻다가 지쳐버린 것이다.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다. ‘나만의 것’을 찾는 과정이라고 고무적으로 여기다가도 금세 풀이 죽는다. 한동안 무력하게 지내는 중에 호스피스 병원의 의사 레이철 클라크가 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를 읽었다.
의사 아버지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레이첼은 저널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결국 다시 의대에 입학해 의사가 된다. 레이철이 자라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의사로서, 때론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부터 끊임없는 희생을 감내하는 존경스러운 모습까지 보인다.. 하지만 레이철이 정작 의사가 되고 나서 본 병원의 모습은 어쩐지 기이하다. 의사들조차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죽음은 그저 미루거나 처치해야 하는 과정으로만 여겨졌다. 이상하지 않은가. 태어난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기 마련인데 말이다. 특히 레이철은 의사들이 생명 연장을 위해 추후 환자의 삶이 비참해질 때까지 가하는 치료와 처치에 대해 경악한다. 결국 조금 더 길게 살게 됐으나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오히려 비인간이고 끔찍한 말년을 보내는 환자들을 보며 레이철은 행복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자연스레 생명을 살리는 의료 행위가 아닌, 고통을 없애고 평안한 마지막을 보내게 돕는 의료 행위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호스피스에서 근무하게 된 레이철은 사람들은 상상처럼 호스피스가 우울하고 음침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호스피스 업무가 무척 힘들고 우울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와 정반대라고 대답한다. 호스피스에서는 용기와 연민과 사랑하는 마음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한다. 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최고의 모습을 선보이는 사람들을 수시로 목격한다.”
동시에 레이첼은 우리 모두가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부인하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죽어 감은 곧 살아 감과 같다. 여기선 아름답고 달콤 씁쓸하며 부서지기 쉬운 게 인생이라는 삶의 본질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의사로서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의연해지던 레이첼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린다. 그의 아버지가 말기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아버지는 병원이나 호스피스 대신 집에 머물며 각종 도움을 받기로 한다. 물론 이 도움의 가장 큰 부분은 가족이고, 가족 중에 전문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천천히 그리고 급격히 시들어 가는 과정을 함께 한다. 때론 두려움 때문에 고집스러워지고 감정적으로 구는 아버지 곁에 머문다.
레이철이 만난 용감하고도 다정한 시한부 환자들의 이야기와 말기암을 선고받은 후 그 과정을 딸과 공유하는 레이철의 아버지의 솔직한 용기는 단연 건강과 영생을 자부하듯 사는 우리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책을 읽으며 나의 고민의 깊이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과연 ‘대단한 목적’씩이나 가지고 태어난 인생들인가. 때론 너무 허무하게 사그라들고 부서지는 예측불가한 인생에 지나친 것을 기대하고 계획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볍고 명랑하게, 지금 재밌는 일을 하며, 삶에 감사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 아닐까. 갓생은 어쩌면 매일 치열하게 모든 일을 완벽히 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기고 만족하는 부분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특별한 것을 알아낸 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고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만의 것을 만드는 과정이다. 레이철의 책이 주는 기운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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