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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서 남주자!_책 리뷰

고전<스토너> 리뷰 에세이_버티는 삶을 사는 평범한 당신을 위한 위로같은 책

by 포포위 2023. 7. 11.

오춘기라도 온걸까. 서른다섯을 막 넘긴 요즘 자꾸 맘속에 두가지 생각이 부딪친다. 나는 헛헛함을 뗏목삼아 그 생각들 사이를 두둥실 떠다닌다. 그 생각들은 이렇다. 뻔한 얘기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평범하게 사는 일조차 참 어렵다. 어릴 때 그렸던 ‘적당한 집에 살고 적당한 차를 몰고 종종 여행하는 평범한 어른’의 삶이라는 건 사실 ‘느긋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해서 겨우 ‘평범’에 닿을 수 있는 우리 세대. 그렇다면 ‘평범’이란 결국 특별한 것이 아닐까? 

 
스토너(초판본)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제대로 시작할 수조차 없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전 세계 수많은 문학 애호가들의 인생 소설로 손꼽히는 명작 《스토너》가 1965년 미국에서 처음 발행됐을 때의 표지로 출간된다. 50여 년 전, 이 책의 초판은 출간 1년 만에 절판되었지만 2010년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재출간되며 역주행 베스트셀러 신화를 쓴다. 이 책을 두고 평론가 모리스 딕스타인은 “당신이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최고의 소설”이라 극찬했으며, 영국의 유명 작가 닉 혼비,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는 물론 수많은 국내 명사와 독자 역시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 에디션에서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추천사 전문을 실었다. 또한 초판에 담긴 일러스트레이션을 완벽히 재현했다. 주인공 스토너가 평생을 보낸 대학에 있는, 화재로 모든 게 스러지고 기둥만 남은 어느 건물 그림이다.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기둥만은 불쑥 솟아 괴상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이는 스토너가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자 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과대학에 입학하지만,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꾼다. 전쟁의 열기가 젊은이들을 휩쓸고 갈 때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교수직에 몸담은 뒤에도 출세의 뜻을 내비치지 않는다. 조용하고 소박하게, 그러나 쉬지 않고 열정을 좇아가는 스토너를 보며 특별한 감동에 젖을 수 있다. 평생 한곳에 살았던 스토너가 문학을 통해 자신의 공간을 넘어서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당신 또한 《스토너》 초판본을 통해 이 소설이 견뎌낸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뛰는 경이로움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저자
존 윌리엄스
출판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일
2020.06.24

그런 낙관적인 관망에도 불구하고 작은 핸드폰 속 세상에는 지나치게 특별하고 지나치게 잘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너무 반짝반짝 빛나서 도저히 숨겨지지 않은 인재들이 SNS에, 유튜브에 빽빽하다. 오죽하면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똑똑한 사람들은 흥미롭지도 않을 지경. 화려한 외모부터 유니크한 취향과 취미, 철학 심지어 경제적 자유까지 손에 쥔 이들을 보고 있자면, 평범조차 버거운 내가 이 사회에 설 자리는 있을까 자꾸 작아진다. 그래서인지 딱히 열정이 샘솟는 일도, 재밌는 일도 없는 요즘, <스토너>를 만났다. 

<스토너>를 읽다가 마지막 즈음에 조금 울었다. 다른 분들이 쓴 서평을 대충 훑어보니 나처럼 마지막 챕터에 울었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슬픔의 눈물도, 연민의 눈물도 아니었다. 가슴이 일렁일렁 쏟아질 것 같고 코가 맵싸했다.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스토너였다. 공감의 눈물이었다.

거의 6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이야기가 어째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토록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까? 그것은 스토너의 삶과 우리의 삶의 결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토너>는 견디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안에서 잠시 빛나다가 사그러드는 열정과 황홀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체로 긴 시간을 견디다가 잠시 주어지는 즐거움과 쾌락에 위로받는 우리처럼, 때론 사회적 기대나 의무 때문에, 자존심이나 체면, 죄책감 때문에 그 즐거움을 꽉 붙잡지 못하는 우리처럼 스토너도 그런 삶을 살았다.

1900년 대 초 성실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자란 스토너는 아버지의 권유로 다른 도시의 대학에 가게 된다. 대학에 갈 형편은 전혀 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농장의 미래를 변화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한 듯 보였다. 막상 대학에 온 스토너는 농업 기술보다는 영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전쟁이 발발하고 친구들이 애국심이나 호기심 등의 이유로 입대를 할 때에도 스토너를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죄책감과 열패감을 안고서.

그는 계약직 교수가 되고 한 여자에게 반하게 된다. 조금 수동적인 자세로 스토너의 데이트 신청에 응한 이디스는 곧 스토너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저 사회적으로 우아한 숙녀에게 요구되는 기대의 압박을 이기지 못했을 뿐이었던 이디스는 결혼을 하자마자 스토너에게 냉정하고 히스테리컬한 모습을 보인다. 스토너는 사는 내내 배우자 이디스에게서 어떠한 사랑과 연민을 받지 못하고 단절된 결혼 생활을 한다. 이디스의 이런 히스테리는 스토너에게 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게 태어난 딸에도 전달된다. 한때 총명하고 호기심많던 딸은 통제적인 어머니 아래서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이를 스토너는 무기력하게 지켜만본다. 이런 스토너의 태도는 사는 내내 보여진다. 정서적 학대를 받는 딸을 위해서도, 자신이 유일하게 즐거움을 느끼는 커리어가 부당하게 방해받을 때도,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연인을 잃을 때도 스토너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독자는 이런 스토너의 삶의 고비를 마주할 때마다 답답함과 속상함을 느낀다. 그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위해 싸우길 바란다. 우리 모두는 은연 중에 알고 있다. 우리도 때론 스토너와 같다는 사실을. 가족을 위해, 주변의 평화를 위해,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우린 부당함을 견디기도 한다. 스토너는 죽음이 가까워졌을 무렵 자신의 삶과 화해를 한 듯 보인다. 그는 삶에 대한 후회와 추억을 한 편에 묻어두고 떠날 준비를 한다.

 

스토너를 덮으며 나는 비릿한 슬픔을 느낀다. 동시에 미지근한 위로도 받는다. 견디고 버티는 삶도 마냥 고되고 슬픈 것은 아니라고.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존재하는 인생, 묵묵히 나아가는 우리를 위한 다정한 편지같은 책이었다.

에 배치하세요. 작가 wirestock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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