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서수진
- 출판
- 한겨레출판사
- 출판일
- 2020.07.28
여전히 E-book보다는 종이책 시장이 강세다. 출판 산업 자체는 어렵지만, 그 안에서도 들여다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나도 종이책이 더 좋다. 만질 수 있는 질감과 특유의 향이 있고, 읽고나서 어딘가에 꽂아두면 뿌듯하다. 하지만 해외에 사는 나에게 한국어 종이책은 사치품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에 갈 때 책을 사오는 것도 수하물 무게를 생각하면 부담스럽다. 책 대신 필요한 화장품이나 음식을 쟁여넣게 되는 것이 현실. 그래서 e-book을 애용한다.
지난 주말도 e-book 리더기를 켜고 무슨 책을 볼까 훑어 내려가던 중, ‘코리안 티처’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해외에 거주 중인 작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 화면을 뚫고 나오는 드문 드문한 정보들 가운데 벌써 두가지나 나와 같다. 해외 거주 중,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자. 내가 사는 곳엔 대사관도 한국어 학당도 없다. 여전히 내가 가르치는 주된 수업은 영어지만, 몇년 전부터 심상찮게 치솟는 k-pop과 k-drama의 인기를 등에 업고 한국어 수업도 시작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과 호감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주말이 채 가기도 전에 다 읽었다. 몇 페이지들은 괜히 다시 돌아가서 읽기도 했다.
참 다른 듯 닮은 여자들의 생존기
네 명의 참 다른 듯 비슷한 한국어 강사들이 봄 학기, 여름 학기, 가을 학기, 겨울 학기를 보내며 겪는 이야기다. 얼핏 보면 그들은 참 다르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갸날파서 부서질 것만 같은 선이, 부러질 지 언정 절대 꺾이지 않는 대나무 같이 강직한 미주, 홀로 행복한 동화 속에 살고 있는 듯한 가은과 독한 생활력과 현실감각으로 어디서든 살아남을 것 같은 한희. 나는 그들이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삶의 장면들을 공감했다. 그런 장면들을 살아내면서 변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공감했다. 호의가 배신으로 돌아오는 순간, 내 권리가 마치 폭력처럼 보여지는 순간, 서로 다른 모국어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오해, 누군가에겐 큰 돈이 아닌 액수에 나오는 아쉬운 소리, 나 또한 일상적으로 그리고 일터에서 겪는 일들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살아남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이 맞다. 어느 순간 갑자기 ‘어른’이자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명을 다하고 제 몫을 해낼 것을 기대받는 우리들이 살아내는 이야기이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 외딴 섬에 살게 되었다. 친구들이 사회인으로서 살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나는 다시 어린애가 된 듯이 말을 배우고, 친구를 사귀는 법을 또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뒤처지는 듯한 불안감과 쓸모없는 어른이라는 자괴감 사이에서 조금씩 균형을 잡으며 내 살 길을 찾아냈다. 지금도 내가 사회인 일인분의 몫을 잘 해내고 있냐 물으면 갸우뚱하다. 그래서 위로를 받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누구나 자기만 알고 있는 서툼이 있다는 위로. 그것이 이 책이 주는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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