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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서 남주자!_책 리뷰

<코리안 티처>- 외국에 사는 한국어 강사가 읽다

by 포포위 2024. 6. 17.
 
코리안 티처
긴 시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매년 그 신뢰에 보답하고자 노력해온 한겨레문학상이 스물다섯 번째 수상작 《코리안 티처》를 출간했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정아은의 《모던 하트》, 강화길의 《다른 사람》,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등 한국소설을 이끌어가는 많은 작가를 배출해온 한겨레문학상은 비록 수상작을 내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전원 여성 심사위원을 위촉했던 제24회 한겨레문학상에 이어, 이번 제25회 한겨레문학상에서도 심사위원 전원을 여성 작가로 위촉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낸 작품을 선정하고자 노력했다. 심사위원 여덟 명의 단단한 지지를 받으며 선정된 수상작은, 한국어학당에서 일어나는 네 명의 여성 시간강사의 이야기를 담은 서수진 작가의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다. 심사를 맡은 강영숙 소설가는 이 소설이 “고학력 여성들을 포함해 많은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것을 아직도 막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평했고, 오혜진 평론가는 추천의 말을 통해 “충분한 인적·물적 여건과 체계적인 프로그램 없이 외국 유학생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이는 ‘한국어학당’이라는 ‘현장’”을 핍진하게 그려냈다는 점과 “결코 ‘미래’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고객님’들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시간과 노동, 감정과 에너지를 마지막 한 알까지 쥐어짜내는 무저갱의 세계, 그런 세계조차 누군가에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마지막 ‘가능성’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현재 호주에 거주 중인 작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시상식 불참을 알려왔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자 중 재해로 인해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한 건 서수진 작가가 최초다. 이번 제25회 한겨레문학상은 수상 소식 고지에서부터 신문사 인터뷰, 책 홍보 등 모든 것이 다 랜선으로 진행되고 있다.
저자
서수진
출판
한겨레출판사
출판일
2020.07.28

여전히 E-book보다는 종이책 시장이 강세다. 출판 산업 자체는 어렵지만, 그 안에서도 들여다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나도 종이책이 더 좋다. 만질 수 있는 질감과 특유의 향이 있고, 읽고나서 어딘가에 꽂아두면 뿌듯하다. 하지만 해외에 사는 나에게 한국어 종이책은 사치품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에 갈 때 책을 사오는 것도 수하물 무게를 생각하면 부담스럽다. 책 대신 필요한 화장품이나 음식을 쟁여넣게 되는 것이 현실. 그래서 e-book을 애용한다.

지난 주말도 e-book 리더기를 켜고 무슨 책을 볼까 훑어 내려가던 중, ‘코리안 티처’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해외에 거주 중인 작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 화면을 뚫고 나오는 드문 드문한 정보들 가운데 벌써 두가지나 나와 같다. 해외 거주 중,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자. 내가 사는 곳엔 대사관도 한국어 학당도 없다. 여전히 내가 가르치는 주된 수업은 영어지만, 몇년 전부터 심상찮게 치솟는 k-pop과 k-drama의 인기를 등에 업고 한국어 수업도 시작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과 호감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주말이 채 가기도 전에 다 읽었다. 몇 페이지들은 괜히 다시 돌아가서 읽기도 했다.

참 다른 듯 닮은 여자들의 생존기

네 명의 참 다른 듯 비슷한 한국어 강사들이 봄 학기, 여름 학기, 가을 학기, 겨울 학기를 보내며 겪는 이야기다. 얼핏 보면 그들은 참 다르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갸날파서 부서질 것만 같은 선이, 부러질 지 언정 절대 꺾이지 않는 대나무 같이 강직한 미주, 홀로 행복한 동화 속에 살고 있는 듯한 가은과 독한 생활력과 현실감각으로 어디서든 살아남을 것 같은 한희. 나는 그들이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삶의 장면들을 공감했다. 그런 장면들을 살아내면서 변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공감했다. 호의가 배신으로 돌아오는 순간, 내 권리가 마치 폭력처럼 보여지는 순간, 서로 다른 모국어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오해, 누군가에겐 큰 돈이 아닌 액수에 나오는 아쉬운 소리, 나 또한 일상적으로 그리고 일터에서 겪는 일들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살아남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이 맞다. 어느 순간 갑자기 ‘어른’이자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명을 다하고 제 몫을 해낼 것을 기대받는 우리들이 살아내는 이야기이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 외딴 섬에 살게 되었다. 친구들이 사회인으로서 살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나는 다시 어린애가 된 듯이 말을 배우고, 친구를 사귀는 법을 또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뒤처지는 듯한 불안감과 쓸모없는 어른이라는 자괴감 사이에서 조금씩 균형을 잡으며 내 살 길을 찾아냈다. 지금도 내가 사회인 일인분의 몫을 잘 해내고 있냐 물으면 갸우뚱하다. 그래서 위로를 받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누구나 자기만 알고 있는 서툼이 있다는 위로. 그것이 이 책이 주는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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