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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서 남주자!_책 리뷰

타인의 삶을 살피고 보듬는 사랑 이야기,<불편한 편의점> 소설 리뷰

by 포포위 2023. 1. 27.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저 사람들 하나하나는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이고,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아마 지금 카페 앞을 지나는 저 중년의 여자는 자식이 둘이고 그중 하나는 외국에서 유학 중일지도 모른다. 그는 유학 중인 자식을 애타게 그리워한다. 맞은편 길의 어린 남학생은 얼른 집에 가서 게임을 하고 싶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플레이 스테이션 5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일단은 학원 수업을 가야 한다. 그 남학생 뒤의 젊은 여자는 막 헤어졌다. 오히려 속이 시원하지만 그래도 씁쓸함은 감출 수 없어서 가장 친한 친구와 술 한잔이 간절하다. 그 친구는 새해를 맞아 유럽 여행 중이라 이곳에 없다.

이렇게 우리 각자는 징그러울 정도로 복잡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품고 살지만, 평소 우린 마취된 것처럼 그 사실을 잊는다. 내 곁을 지나는 사람은 그저 영화 속 엑스트라같은 타인이라고 가볍게 여긴다.

 
불편한 편의점(큰글자도서)
불편한데 자꾸 가고 싶은 편의점이 있다! 힘들게 살아낸 오늘을 위로하는 편의점의 밤 정체불명의 알바로부터 시작된 웃음과 감동의 나비효과 『망원동 브라더스』 김호연의 ‘동네 이야기’ 시즌 2
저자
김호연
출판
나무옆의자
출판일
2022.07.07

 

<불편한 편의점>은 그 ‘타인’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소설의 가장 큰 줄기는 지저분하고 술에 취해 있는 서울역 노숙자의 삶에 돋보기를 들이미는 것에서 시작한다. 노숙자는 한 여성이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주면서 그 여성과 연을 맺는다. 여자는 교사직을 은퇴한 후 숙명여대 앞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염여사이다. 염여사는 정직하게 지갑을 찾아 돌려줬을 뿐만 아니라, 그 지갑을 뺏어가려는 다른 노숙인들과 싸우다가 다친 덩치 큰 이 노숙자에게 마음이 쓰인다. 그를 데리고 자신의 편의점으로 가서 음식을 먹도록 한다. 염여사는 특유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마음씨로 남자에게 매일 와서 도시락을 먹으라고 한다. 알코올 중독으로 노숙자 이전의 삶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고 ‘독고’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남자는 편의점을 매일 드나들다가 결국 이 편의점의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된다.

 

소설은 옴니버스 식으로 하지만 또 모두가 연결된 유기체처럼 이어진다. 오후 아르바이트생 시현의 이야기, 오전 아르바이트생 오선숙 씨의 이야기, 아르바이트 생들의 복지와 생계를 진심으로 신경 쓰는 편의점 사장 염 여사의 이야기, 염 여사가 편의점을 팔아 자신의 사업에 투자해 주길 바라는 염여사 아들 민식의 이야기, 매일 밤 퇴근 후 혼술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 단골손님 경만의 이야기, 자신의 마지막 희곡을 쓰기 위해 이 동네에 잠시 흘러들어온 인경의 이야기, 편의점 사장 아들의 지시를 받아 독고의 뒤를 캐내려고 애쓰는 흥신소 곽 씨의 이야기까지 모든 이야기가 독고를 중심으로 잔잔하게 흘러간다. 독고씨는 각자 다르고도, 중요한 삶을 사는 타인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매일 술을 먹는 단골 경만을 위해 히터를 따로 구비해 놓으면서도 술을 끊게끔 유도하고, 자신을 혐오스럽게 보는 오전 아르바이트생 선숙 씨에게 어떻게 하면 멀어진 그의 아들과 다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지 힌트를 준다. 이 모든 관계를 통해 독고씨도 서서히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자신의 삶에 대한 기억을 찾는다.

이웃의 손을 잡고 있는 봉사자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이야기는 가볍고 따뜻하다. 하루만에 다 읽을 정도로 부담 없지만 마음에 뭉근한 잔열이 남는다. 새삼스레 나 아닌 타인에 대해 궁금해지게 한다.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고, 호기심을 갖고 상대를 바라보고 싶게 만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혼자 혹은 외롭게 살아간다. 살기라도 하면 다행일 텐데, 우린 매일 같이 고독사라던지 어른들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절망에 눈이 멀어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자식의 삶을 거두고 함께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아파트에는 수도도 전기도 끊겼다는 기사를 본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는 거창한 마법은 필요 없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 하나하나 모두가 나만큼이나 힘들고 복잡하고 소중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린 이웃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어색하고 투박한 손을 꿋꿋이 내밀 때 세상의 온도는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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