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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서 남주자!_책 리뷰

[문과생의 과학 읽기] 겸손함과 안도감을 주는 책 <이기적 유전자>

by 포포위 2023. 1. 18.

자유 의지에 따라 각자의 삶에 대해 결정권을 갖고 산다고 믿는 우리에게.

 
이기적 유전자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저술가로 꼽히는 리처드의 도킨스의 대표작『이기적 유전자』.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책으로,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로 바라보며 진화를 설명한다. 다윈주의 진화론과 자연선택을 기본 개념으로 독특한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주요 쟁점들은 물론, 다양한 현대 연구 이론들과 실험들을 함께 보여준다. 특히 유전의 영역을 생명의 본질적인 문제에서 인간 문화로까지 확장한 문화 유전론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
출판
을유문화사
출판일
2010.08.10

 

살다 보면 종종 운명론자들을 만나게 된다. (본인이 운명론자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든 행동을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 모든 것은 그저 정해진 운명이라고 이야기하는 과학책이 있다면 어떨까.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모든 생물의 주인은 유전자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박테리아부터 코끼리, 독수리, 인간까지 유전자의 생존기계로서 살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 들리기도 하고, 어찌 보면 너무 파격적인 이 이야기를 리처드는 11장에 걸쳐 천천히 풀어나간다.

 

태초에는, 그러니까 물고기도, 단세포 생물도 없던 시절에는 분자가 존재했다. 길고 긴 시간에 걸쳐 ‘우연히’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진 분자가 발생한다. 과학에서 ‘우연’이란 결국 확률이다. 이 특별한 분자는 계속해서 자기와 같은 분자들을 만들어 나갔는데, 이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어떤 ‘오류’가 일어난 분자들도 발생했고, 개 중의 몇은 도태되지 않고 개량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생물의 진화이고, 자연선택설이다. 이렇게 진화에 성공한 분자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막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세포이다. 리처드는 모든 생물은 이 세포 속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운반체이며 생존기계라고 설명한다. 

즉 애초에 생물 발생의 목적 자체가 세포 보호, 더 정확히는 그 안의 유전자 보호이다. 이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메커니즘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사자는 가젤을 쫓고, 가젤은 맞서 싸우기보다 가볍고 긴 다리로 빠르게 도망을 간다. 이 각기 다른 두 행동은 각각의 유전자 보존에 유리한 행동이다. 만약 가젤이 도망가지 않고 사자와 싸웠다면, 혹은 가젤의 귀가 어두웠다면 가젤 종 전체는 유전자 보존에 실패했을 것이다. 

Image by cookie_studio on Freepik

 

우리가 모성애라고 믿는 것 또한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본능이다. 우린 크게 생각하지 않고도 타인의 자식과 나의 자식 중에 누구를 보호할 것인지 고를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내 피를 받은 자식이니까. 내 배 아파 낳아서 내가 잠과 시간을 희생하며 키운 내 자식이니까. 하지만 리처드는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나의 유전자 절반을 가진 친자식을 보호하는 것이 타인의 자식을 보호하는 것보다 유전자 보존에 있어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단으로서의 유전자가 위협받을 때 우리는 때로 자기 희생 혹은 자신의 직계 유전자 희생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 예로 리처드는 일벌을 행동을 든다. 일벌은 번식 능력이 없어서 개체로서는 유전자를 남길 수 없지만 집단에 소속되어 여왕벌을 자신의 유전자 대리 운반체로 여겨, 여왕벌을 보호하고 여왕벌의 생존을 돕는다는 것이다. 일벌은 여왕벌을 위해 일하다가 죽기도 하지만 그 행위는 여왕벌에 대한 충성이 아닌 유전자 보존에 이유가 있다. 그는 결국 자연에서 발생하는 공생관계 또한 동화같이 따뜻한 이야기가 아닌유전자 보존에 유리한 선택적 행위임을 강조한다.  

 

비자녀 기혼 여성으로서 재미있게 본 부분은 리처드가 찌르레기의 번식계획(?)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유전자를 더 확실히 보존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자손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수의 불확실한 보존보다는 소수의 ‘확실한’ 보존을 선택하기도 한다. 곧 알을 낳을 찌르레기 두 마리 중 한 마리에게는 아주 시끄럽게 여러 마리의 찌르레기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려주고 다른 한 마리에게는 반대로 조용한 환경을 제공한다면, 시끄러운 찌르레기 소리를 들은 암컷은 비교적 알을 적게 낳는다. 주변에 경쟁 상대가 많아 먹이가 부족하고 양육이 어려울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유전자 보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생존기계가 움직인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잘 어울림에도 불구하고 내 자손을 낳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지금 이런 환경에서 다음 세대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생존이 가능할까 라는 불안이 비자녀를 택한 이유 중 하나인데, 찌르레기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고민이 좀 더 이해가 되었다.

반면 리처드가 어린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는 것은 비단 어미의 관심을 끌어 더 많은 음식을 먹기 위함이 아니라, 포식자를 끌어들여 자신의 경쟁 상대를 제거하려는 본능적인 목적이 있다고 이야기한 부분을 읽으며 우리에게 생존 본능, 즉 유전자 보존 본능이 얼마나 강한지를 새삼 느꼈다. 



이쯤 되니 나의 생각은 이렇게 이르렀다.

도대체 인간에게 도덕적 가치가 무슨 소용일까. 결국 저 작은 파리와 인간의 생존 목적이 똑같이

유전자 보존일뿐이라면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반은 달관적이고 반은 비관적인 생각에 빠질 때쯤 리처드는 아주 중요한 장을 쓴다.

그것은 밈(Meme)에 대한 것이다. 밈은 문화 전달, 문화 모방의 단위이며 음악, 사상, 의복, 관습 모든 문화적인 것이 밈에 포함된다. 리처드는 인간은 유전자의 자기 복제 외에 문화적 자기 복제를 학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 대항할 힘이 있다.”

그는 인간은 이 밈을 통해 단지 유전자 보존만을 위한 행위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맥락과 기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법’이다. 범죄의 내용이 실질적으로는 유전자의 이기적인 성질에 의해 이해될 수 있다고 보더라도 우린 법을 통해 그 본능에 저항하고 규칙을 만들었다.

 

책 전반에 걸쳐 그가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는 표현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하지만 유전자 자체는 사고능력이 없다. 사고할 수 없는 존재에게 ‘이기적’이라는 것은 결국 ‘생존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책을 덮을 때쯤 나는 이상하게 안도와 겸손을 느낀다. 우주 과학이 아주 거시적인 시점으로 우주와 인간을 먼지보다 작은 존재로 만들어 줬다면, 이 책을 아주 세밀하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인간도 그저 유전자 보존에 충실한 대단할 것도, 하찮을 것도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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