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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서 남주자!_책 리뷰

인류애가 충전되는 이야기. <밝은 밤> by 최은영 리뷰

by 포포위 2023. 1. 11.

사람에게 지치는 날에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그중에도 고 박완서 작가님의 책과 최은영 작가님의 책은 읽으면 읽을 때 마다 이리저리 까져서 나풀거리던 마음의 표피가 단단히 여며지고 토닥여지는 느낌을 받는다. 글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쩜 이런 곱고 다정한 문장들을 썼을까, 감탄이 비눗방울 터지 듯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밝은 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와 서정적이며 사려 깊은 문장,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뜨거운 문제의식으로 등단 이후 줄곧 폭넓은 독자의 지지와 문학적 조명을 두루 받고 있는 작가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 ‘문화계 프로가 뽑은 차세대 주목할 작가’(동아일보) ‘2016, 2018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교보문고 주관) ‘독자들이 뽑은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예스24) 등 차세대 한국소설을 이끌 작가를 논할 때면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선명히 떠오르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최은영 작가는 2019년, 예정돼 있던 소설 작업을 중단한 채 한차례 숨을 고르며 멈춰 선다. 의욕적으로 소설 작업에 매진하던 작가가 가져야 했던 그 공백은 “다시 쓰는 사람의 세계로 초대받”(‘작가의 말’에서)기까지 보낸 시간이자 소설 속 인물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밝은 밤』은 그런 작가가 2020년 봄부터 겨울까지 꼬박 일 년 동안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작품을 공들여 다듬은 끝에 선보이는 첫 장편소설로, 「쇼코의 미소」 「한지와 영주」 「모래로 지은 집」 등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편소설에서 특히 강점을 보여온 작가의 특장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가 출간된 2016년의 한 인터뷰에서 장편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작가는 “엄마나 할머니, 아주 옛날에 이 땅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라고 말했던바, 『밝은 밤』은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며 자연스럽게 백 년의 시간을 관통한다. 증조모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나’에게서 출발해 증조모로 향하며 쓰이는 이야기가 서로를 넘나들며 서서히 그 간격을 메워갈 때, 우리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건 서로를 살리고 살아내는 숨이 연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 자체가 가진 본연의 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은은하며 강인한 존재감으로 서서히 주위를 밝게 감싸는 최은영의 소설이 지금 우리에게 도착했다.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1.07.27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은 이미 여러 차례를 읽었다. 처음엔 정말 단숨에 읽어 내려갔고 그게 아까워서 다 읽자마자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었다. 그 후에도 나를 포함한 ‘사람’이 지긋지긋해지는 때마다 들여다본다. 그야말로 “인류애 충전소”랄까.

 

인류애 충전소라니까 그저 밝고 따뜻하기만 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책의 줄거리만 늘어놓자면 오히려 너무 고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여자들의 연대와 우정, 오해, 이해, 화해로 이루어져있다. 전체의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화자 ‘나’ 지연과 그의 엄마 미선. 외할머니 영옥, 증조모 삼천이와 벗 이상의 마음을 나눈 새비, 새비의 딸 희자와 새비의 친척 명옥 할머니까지. 여자들의 귀한 마음이 얽히고설켜 시공간을 뛰어넘는 위로를 건넨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고 정신이 피폐해진 주인공 지연은 어릴 적 갔었던 해변 시골 마을로 일을 하러 간다. 단지 일때문에 간다고 할 순 없고 도피에 가깝다. 그곳에서 엄마와의 불화로 인해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외할머니를 우연히 재회하고, 할머니의 엄마, 즉 증조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증조할머니의 젊은 시절은 일제 시기를 거쳐 한국 전쟁이 발발하던 때였으니 객관적으로는 ‘밝고 따뜻한 이야기’라고 볼 순 없다. 지극히 고생스러운 삶이다. 하지만 백정의 딸로 태어나 늘 괄시받고 외로웠던 증조할머니 삼천이를 편견 없이 아껴준 새비의 마음, 전쟁이 만든 의심과 피폐함 속에서도 명옥할머니가 지켜낸 연대와 보호는 전쟁을 모르는, 배고픔을 모르는 세대인 나의 마음마저 뜨끈하게 녹인다. 자연스럽게 증조할머니에게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까지 흘러오고 ‘나’는 엄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나는 벅차오르는 마음에 눈물을 쏟고, 인물이 말한 내용을 찬찬히 육성으로 따라 읽고, 활자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만져보기도 한다.

 

그 중 내가 사랑하는 두 부분을 공유하고자 한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 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자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깨에 기대는 사람도,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도. 구름 사이로 햇빛이 한 자락 내려오듯이 내게도 다시 그런 마음이 내려왔다는 생각을 했고, 안도했다.”

<밝은 밤> 中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그 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밝은 밤> 中

 

 

이 부분들은 그저 이 책의 일부이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가 아니다. 사실 이 책에선 하이라이트라거나 클라이막스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전부를 읽어야 온전히 하나가 되는 이야기기에.

최은영 작가님이 이 책을 쓸 때 처럼,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이 책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 마음에도 충만한 평화에 젖어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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