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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리고 에세이

[다음 소희]실습생의 죽음, 무책임한 어른들의 세상 속 특성화고 학생 실습생들의 이야기(스포X)/줄거리 및 감상평

by 포포위 2023. 3. 22.

줄거리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18살 소희는 당차고 씩씩하다. 어느 정도 당차냐고? 고깃집에서 자기의 친구에 대해 수군거리는 뒤테이블의 남자들에게 악을 쓰며 싸우자고 덤빌 정도로 말이다. 이런 소희가 대기업 통신사 하청업체의 상담원으로 현장 실습을 나가게 된다. 좁은 취업문을 뚫은 소희는 희망에 부푼다. 소희의 담임선생님은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했는데도, 근무 첫날 또 다른 계약서를 들고 와 읽기도 전에 사인부터 하라고 한다. 소희가 사인을 하는 동안 담임선생님은 옆에 앉아 근무환경 순회지도표에 모두 좋음으로 체크한다. 긴장되는 업무 첫날 소희는 다른 실습생의 상담내용을 함께 들으며 업무를 익힌다. 날 선 고객들의 목소리와 폭언에 놀라는 소희 앞에 곧 나타난 것은 거대한 실적표이다. 누가 얼마큼의 실적을 올렸고, 얼마큼의 고객들을 유치했으며, 얼마큼의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는지 하나하나 분석한 표 앞에 실적이 좋지 않은 상담원들은 죄인이다. 약간의 당혹감과 의구심을 갖고도 소희는 일을 해나간다. 일이 아무리 고돼도 절대 중도 탈락하지 말라는 담임선생님의 압박과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일을 해내가고 싶은 욕심 모든 것이 소희에게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한달 뒤 소희는 계약서에 쓰여인 숫자에 전혀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깜짝 놀랐다. 이유를 따져 묻는 소희에게 상사는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그 와중에도 고객들의 폭언은 계속된다. 성희롱하는 고객부터 욕설을 하는 고객까지, 어느날 밤 잔업을 하느라 늦게까지 고객을 응대하던 소희는 참지 못하고 고객과 언쟁을 벌인다. 고객이 본사에 항의를 하면 일이 커질 것을 걱정한 소희는 상사에게 가서 사과를 하고, 지친 얼굴의 상사는 이렇게 말한다.

“재수가 없어서 걸린거지, 뭐…”

그다음 날 상사는 유서를 남기고 죽은 채 차 안에서 발견된다.

회사는 곧바로 죽은 상사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직원들에게 모든 것에 대해 함구할 것을 약속하는 서류에 사인을 할 것을 종용한다.

상사가 죽은 후 소희는 달라졌다. 기계처럼 고객을 대하기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상담사들에게 ‘70대 노인들이 제일 편하다’는 둥, ‘20대는 1분 컷’이라는 둥 비인간적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팀 내에서 실적도 가장 높아졌다. 무방비로 노출된 폭언에도 점점 익숙해지던 소희는 다음 달 월급을 받아 든다. 가장 높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약서 상의 기본 월급에도 못 미치는 돈이다. 소희의 새상사는 ‘실습생들은 자꾸 그만 두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천천히 준다’라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댄다. 그제야 소희는 깨닫게 된다. 이곳에서 실습생은 그저 뽑아쓰는 휴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열심히 일한들 인정은 커녕 제대로 된 월급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소희는 상사의 얼굴을 때리고 무급 징계를 받고 그날 친구와 술을 마신 후 손목을 긋는다. 다행히 병원에서 깨어난 소희는 집으로 가는 길, 부모님에게 일을 관둬도 되냐고 묻지만 그들은 듣지 못한 듯 대답이 없다. 소희의 담임은 자신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네 자리를 보전해놓았다며 다시 돌아가라고 강요 같은 부탁을 한다.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온 후 소희는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다음 소희
“나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다?” 춤을 좋아하는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오랜만에 복직한 형사 유진.사건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쫓는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언젠가 마주쳤던 두 사람의 이야기.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다.
평점
9.7 (2023.02.08 개봉)
감독
정주리
출연
배두나, 김시은, 정회린, 박우영, 송요셉, 박윤희, 허정도

소희의 시신을 수습한 형사 유진은 부검과 조사를 원하는 소희 부모님의 청을 듣고 소희를 자취를 좇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탐탁치 않은 것들을 자꾸 마주하게 된다. 과연 유진은 진실을 알게 될까? 그러고 나면 무언가가 변화될까?

감상평

<다음 소희>는 지난 2017년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재구성했다. 전주의 한 특성화고에서 애견 관리에 관한 기술을 배우던 홍수연 양은 자신의 전공과 동떨어진 한 통신사의 상담센터에서 실습을 하게 되었고 여러 부당한 대우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걸까. 나이로만 무 자르듯 어른의 자격을 내릴 수 있는 걸까.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절로 어른이 되는 거라면 우린 어른에게 큰 기대를 할 수 없다. 나이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육체적인 능력과 힘? 이미 열네 살만 되어도 키는 나보다 훌쩍 크고 손도 큼지막하고 수염이 자라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초콜릿 하나에 목숨을 거는 덩치만 큰 아이들이다. 

사람이 자라는 과정은 작은 싹이었던 어떤 것이 나무가 되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무의 생애 어느 한 순간을 싹둑 잘라 여기까지가 그냥 새싹 줄기, 여기부터가 진짜 나무라고 부를 수 없다. 여리고 보드랍던 연둣빛의 어떤 것의 표피에 자꾸자꾸 겹이 생기고 뜨거운 햇볕을 버텨내고 매몰찬 빗줄기 속에 서있다가 휘몰아치는 바람도 맞아가며 어느 순간 강인한 나무가 된다. 여린 것이 강해지는 그 과정 자체가 ‘어른됨’이다. 하여 지금 막 학교 밖 세상으로 나온 아이들은 덩치가 얼마나 크던 간에, 얼마나 발랑 까져 보이고 담이 커 보이든 간에 아직은 ‘여린 것’에 가깝다. 그 여린 것들에게 사회의 맛을 보여준답시고 시뻘건 불구덩이에 들이밀거나 폭풍우 속으로 밀어 넣는 사회는 좋은 사회인가.

영화 &lt;다음소희&gt; 중 소희가 실습생들과 함께 서있는 모습
영화 <다음 소희> 중

우린 <다음 소희> 속의 어른들이, 세상이 가상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특성화 고등학교와 마이스터 고등학교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학생들을 육성한다는 취지 하에 소위 국영수과 등의 교과목을 줄이고 직업기술을 연마하고 나아가 졸업 전에 학생들이 취업까지 달성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취지만 보면 상당히 실용적이고 이 시스템의 문제는 곧 드러났다. 학생들의 취업률이  ‘실적’처럼 수치로 계산되고 이 수치에 따라 학교의 재정부터 위신까지 결정되다보니, 학교는 어느새 인력사무소가 되어버렸다. 학생들이 실습을 나가는 기업의 근무환경이나 근무 형태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기업의 비위나 맞추는, 그야말로 주객전도의 상황. 기업은 젊고 순진한 인력을 제발 데려가달라는 학교에게 거드름을 피우며 값싼 노동력을 받아온다. 아이들은 그간 배운 전문 기술과 동떨어진 곳으로 현장 실습을 나가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학생들에게 실습은 기술을 배우는 현장이라기 보단, 어른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하며 이용당하는 착취현장이다. 불공정한 임금, 위험한 근무환경, 폭력적인 업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아이들은 다시 돌아갈 것을 종용받거나 교내에서 징계를 받으며 실패자로 낙인찍힌다.

이 여린 것을 보호해주는 울타리는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는 사회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원래 그렇게 냉혹한 곳이라고, 강인하고 영리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나는 우리가 그렇게 이 악물고 다른 약자를 짓밟지 않아도 살아남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며 내 18살, 20살 시절을 떠올렸다. 새싹과 나무 그 가운데 무엇이었던 시절, 연약하고 순진했지만 가능성으로 가득 차 빛나던 시절, 그만큼 쉽게 이용당할 수도 있었던 시절, 그 시절을 지나 두툼한 나무가 된 우리들은 든든한 그늘을 드리워 새싹도 아닌, 나무도 아닌 것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영화 마지막 부분 쯤 눈물 가득 고인 태준이 한 말이 자꾸 맴돈다.

"감사합니다..." 

우린 더이상의 소희를 만들어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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