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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리고 에세이

[여성 서사]영화 길복순/줄거리 및 감상 포인트&감상평(스포X)

by 포포위 2023. 4. 2.

영화 길복순 줄거리

십 대 딸을 가진 청부살인업자, 즉 킬러 길복순은 그 세계에서 평판이 자자하다. 일처리가 빠르고 깔끔해서 모두의 존경과 선망 어린 시선을 받지만 딸 귀가 시간에 맞춰 장을 보고 반찬을 차려두는 엄마이기도 하다. 딸아이가 제멋대로 쌓아둔 옷가지를 들고 세탁실로 가다가 툭 떨어진 담배를 발견한다. 그 담배는 자신을 어린 시절의 한 기억 조각으로 이끈다. 경찰이었던 아버지, 밖에선 존경받고 집에선 학대를 일삼던 폭군. 그는 복순의 첫 희생자였다. 복순도 어느 날 그에게 담배를 들켜버리고 눈이 퉁퉁 붓고 입술이 터지도록 매를 맞고 담배를 씹어 삼키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그 같은 부모가 되고 싶지 않은 복순은 어떻게 반응할지 여러 시나리오를 펼친다. 킬러가 된 후의 습관이다. 자신의 다음 수와 상대의 수에 대해 상상을 해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최선을 택하는 것. 업무에 있어선 잘도 먹히는 이 방법이 딸에게 있어서만큼은 통하질 않는다.

복순은 MK 소속 A급 킬러. 전문 킬러 회사마다의 명성도 다 다르지만 MK는 그 중 최상인 데다가, MK 내에서도 A부터 C급까지 나뉘는데 복순은 그 안에서도 최강자다. 하지만 킬러들 사이에서도 이런 시스템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MK가 이 씬에 등장하기 전까지 룰이랄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돈대는 대로 죽이고 다니던 시절이 더 낭만적이고 돈이 된다는 킬러도 있고, MK가 만들어낸 룰 때문에 킬러들 사이에 빈부격차만 심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희성도 MK 소속이지만 MK의 룰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무직자나 아마추어가 킬러들의 판에 끼지 못하게끔 MK가 만들어낸 룰은 이러하다. 첫 번째, 미성년자는 죽이지 말 것. 두 번째, 회자가 허가한 작품만 할 것. 세 번째, 회사가 허가한 것은 반드시 트라이할 것. 즉,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이 규칙들로 인해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차민규(MK설립자)와 복순이 소속된 MK의 독과점이 시작되었다. 차민규와 복순은 특별한 사이이다. 차민규는 복순의 아버지 살해를 청부받은 킬러였는데, 우연히 십 대 딸 복순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되려 민규를 도와 아버지를 죽인다. 차민규는 그때 복순의 탤런트를 알아본다.

 
길복순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청부살인’이 본업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이벤트 회사인 MK ENT. 소속 킬러 ‘길복순’(전도연)은  ‘작품’은 반드시 완수해 내는 성공률 100%의 킬러이자, 10대 딸을 둔 엄마다. 업계에서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에이스지만, 딸 ‘재영’(김시아)과의 관계는 서툴기만 한 싱글맘인 그는 자신과 딸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퇴사까지 결심한다. MK ENT. 대표 ‘차민규’(설경구)의 재계약 제안의 답을 미룬 채, 마지막 작품에 들어간 ‘복순’은 임무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 후, 회사가 허가한 일은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는 규칙을 어기게 된다. 그 소식을 들은 MK ENT.는 물론, 모든 킬러들의 타겟이 되고야 마는데…죽거나 죽이거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시작된다!  
평점
5.0 (2023.01.01 개봉)
감독
변성현
출연
전도연, 설경구, 김시아, 이솜, 구교환, 이연

▲넷플릭스 시청 가능

어느날 복순은 의도적으로 케이스를 포기한다. 인턴을 데리고 실습차 나간 살인 현장이었는데, 희생자가 유명한 정치인의 아들이라는 것과 의뢰인이 다름 아닌 그 정치인, 즉 희생자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처음으로 케이스를 포기한다. 차민규의 여동생이자 MK의 이사인 차민희는 안 그래도 눈엣 가시 같던 복순이 중요한 케이스를 일부로 포기하자 복순을 없앨 계획을 꾸민다.

한편 복순의 딸 재영은 학교에 같이 다니는 여자친구를 좋아한다. 그 여자친구는 남자친구가 있으면서도 비밀히 재영과 뜨거운 감정을 나눈다. 어느날 재영이 학교에서 같은 반 남자아이를 가위로 찔렀다는 전화를 받고 학교로 달려간 복순은 다그치는 과정에서 딸에게 동성애자라는 고백을 듣는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복순의 집에 마침 살해 현장에 같이 나갔던 인턴이 찾아오고, 복순은 그 핑계로 자리를 피한다. 

인턴 김영지를 데리고 술한잔 하러 나온 복순, 그 앞에 나타난 희성과 다른 킬러들은 차민희의 지시를 받고 복순을 죽이려고 달려드는데...

복순은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딸에게 돌아가 사과할 기회가 주어질까?

감상 포인트 및 감상평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진 본질적인 매력은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려는' 노력이다. 그런 노력을 드러내는 세 가지 매력포인트를 꼽자면1. 성적 편견에서 벗어난 캐릭터의 직업2.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범'이라고 믿는 틀에서 벗어난 양상의 가족3.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범'이라고 믿는 이성애적 관계에서 벗어난 양상의 사랑

길복순(전도연)이 김영지(이연)의 뒤에서 목을 조르는 장면/ 영화 길복순 중
넷플릭스 제공

 

정도로 보인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나는 '왜 여자는 킬러마저 엄마여야 하는가!' 잠시 한탄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엄마는 왜 킬러라는 영화적/ 상징적 직업군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미디어에서 비치는 여성상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사실 좋다. 10-40대 여성 모두가 귀여운 것, 화장품, 쇼핑을 좋아한다는 단면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한 개인으로 보이기 위해선, 드라마나 영화 속에 계속 아주 뻔하거나 아주 낯선 여성들이 등장해야 한다. 물론 차민규라는 압도적인 인물이 존재하긴 하지만 영화 전반적으로 여성 캐릭터 간의 갈등과 연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 참 좋았다.복순이 싱글맘인 것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는 '이상 가족'이 존재한다. 아빠/엄마라는 이성애적 관계 아래 보호받는 자녀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의 아이들이 묘한 소외감과 위축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외국에 살면서 나는 나에게도 많은 편견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수업 중에 아이들과 '부모님 묘사하가'라는 활동을 진행하던 중, 새엄마와 친엄마 중에 누구를 묘사하냐고 순진하게 묻던 아이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어째서 모두가 하나의 엄마, 아빠를 가지고 있다고 믿은 것일까. 영화 속 복순은 싱글맘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고급진 아파트에, 예쁜 식물이 울창한 식물원급의 테라스를 가지고 있고 매끼 딸을 위해 임금님 밥상 같은 반찬을 차려낸다는 점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만, 다양성을 반영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영화 속에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장치는 복순의 십대 딸을 동성애자로 설정한 점이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고 모두가 그 정답을 위해 경쟁하고 자신을 욱여넣는 사회가 행복할 리 없다. 상당히 많은 동성애자 청소년들이 방황한다. 한국 사회에선 학교도 가족도 그들을 외면한다. 당장 그들의 곁에서 손잡아주고 응원해 줄 어른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예술'이라도 그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 동시에 '예술'은 멍청한 어른들에게도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가령, 동성애자라는 고백을 한 딸에게 복순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네가 그냥 헷갈렸을 수도 있잖아!'라는 장면을 보며 탄식하는 것도 배움이요, 그 후 진솔하게 사과하는 복순을 보는 것도 배움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 응원이다. 물론 완벽하기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생사가 달린 결투를 하러 떠나는 복순의 하이힐 같은 것이 그렇다. 도대체 누가 죽을지도 모르는 현장에 뛰기는커녕 걷기도 불편한 신발을 신고 가겠는가. 생각해 보니 존윅도 자주 슈트에 구두를 신은 채 싸우긴 했다. 어쨌든 감독의 여러 고민이 보이는 영화여서 좋았고, 이야기의 흐름이 늘어지지 않아서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구교환 배우가 검정옷을 입고 옆을 바라보는 모습/ 영화 길복순 중
넷플릭스 제공/ 한희성 역(구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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