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그리고 에세이

과학 궁금해? 문과생의 추천 영화,<블랙홀: 사건의 지평선에서>

by 포포위 2023. 1. 14.
 
블랙홀 - 사건의 지평선에서
우주에서 가장 신비한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한 탐구를 따르는 다큐멘터리 영상물
평점
8.0 (2020.01.01 개봉)
감독
피터 갤리슨
출연
솁 돌먼, 앤드류 스트로밍거, 말콤 페리, 사샤 하코, 고팔 나라야난

*넷플릭스 시청 가능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나도 꽤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일기를 쓰거나 좋아하는 노랫가사를 따라 적고 가끔은 노래를 불러 녹음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낭만적인 행동이라고 한다면 밤하늘을 보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짧고 화려한 영상들에 정신이 팔려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다. 30분, 40분을 내리 하늘을 바라봐도 전혀 지루하다거나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과학잡지 어디선가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별빛들이 몇백, 몇천 광년을 지나온 빛들이고, 즉 우린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읽었다. 나는 그 글을 읽자마자 바로 매료되었다. 지금 현재의 내가 눈으로 바라보는 이 빛이 사실은 인류가 있기도 전부터 빛나기 시작했다고? 나는 내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 미스터리 한, 하지만 분명히 똑똑한 누군가에 의해 증명되고 밝혀진 그 이야기에 대해 곱씹으며 밤하늘을 바라봤다. 세상은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니까.

처음엔 몇 개 안 보인다고 생각되던 별빛은 눈이 적응되면 점차 늘어났다. 조금 집중하면 나중엔 꽤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그 컴컴한 공간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희망에 차올랐다. 그 희망은 세상의 기대와는 약간 달랐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정말 한시적이라는 것. 모두가 알만큼 유명한 누군가의 삶과 오늘 라면을 끓여 먹고 낮잠을 잔 나의 인생 사이의 무게는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처럼 일시적이고 가벼운 존재가 굳이 ‘성공’을 좇으며 살아야 하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즐겁게 살다가도 그만일 것 같다.

 

이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아이는 고등학교에 가서 본격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수학 과목을 대면하게 된다.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알파벳이 등식을 사이에 두고 왔다 갔다거리는지 정신이 아찔해졌다. 학교에서는 책임의식이 약간 부족한 수학 교사의 수업을 통해 남아있던 일말의 호기심마저 잃는다. 문과와 이과의 갈림길에서, ‘그래도 잘하는 걸 택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문과를 선택했고 그 길로 과학과 ‘손절’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learning

 

그 후 1n년을 과학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누가 무슨 발견을 했다더라, 화성에 간다더라, 인공 지능이 어쩌고, 우주 망원경이 저쩌고 하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끄고 살았다.

과학에 대해 간지러운 호기심이 살랑이기 시작한 건 <알쓸인잡>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장항준 감독과 BTS멤버 김남준 씨가 엠씨를 보고 나머지 패널 세 명은  과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법의학자이다. 물론 작가 김영하 씨도 패널로 있지만, 대화들이 자연스레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 든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이제 와서 전문 지식까진 얻을 수 없을지 언정 상식선에서 여러 분야의 지식을 둘러보자.

이런 생각을 하고 선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평소에 책을 즐겨 읽는데도, ‘까만 것은 글씨요, 하얀 것 종이니’라는 기분은 오랜만이다. 이해 안 되는 부분 이 꽤 많다. 그나마의 위로라면 혼돈스러워하는 와중에 필자(김상욱)는 쓴다.

 

“이쯤에서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으면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보어는 말했다. 리처드 파인만(1965년 노벨물리학상)은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렇게나 혼란스러운 질서를 가진 과학의 맛을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아마 우리 중 대부분은 2019년 과학자들이 찍어냈다는 블랙홀 사진을 봤을 것이다. 나도 네이버 메인 기사에서 봤고 조금 실망했다.

‘어머, 이런 초점도 흐리고 별거 아닌 사진이 뭐라고.’

blackhole-nasa

이 영화를 보면 이 초점흐리고 안 예쁜 사진이 가진 가치를 아주 약간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들이 이 블랙홀 M87 을 찍어낸 과정과 이 블랙홀이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얼마나 큰지를 어렴풋이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단순히 지구를 넘어 우리 은하계와 블랙홀의 거리, 크기를 비교해 주는데 가히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를 먼지라고 칭하기에도 지나치게 거대한 우주, 그리고 이 짧은 순간을 거머쥐려고 애를 쓰는 미천한 우리. 

 

이상하리만치 잔혹하고도 관대한 팩트(fact)를 앞에 두고 우린 묘한 평화를 얻는다. 

이 이상한 만족감을 떠나 내가 영화 속에서 감명을 받은 부분은 이 미치광이 과학자들의 열정과 지구력, 사명감이다. 나라면, 별다른 결과없는 연구나 공부는 20년 이상 할 수 있나? 심지어 궁금하던 질문의 대답을 얻어낸다 해도 당장 당신의 세계가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 그것을 감안하고서도 그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생을 바쳐 연구하고 실패하는 것을 반복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건너고자 하는 강은 미지의 함정 투성이다. 

Stephen Hawking and his colleagues
ⓒsandboxfilms

 

영화는 남극, 스페인, 멕시코, 칠레 등 세계 곳곳에 거대한 망원경을 설치해 동시에 블랙홀을 촬영한 뒤 결과를 조합하려는 연구팀의 시선을 따른다. 동시 촬영이 뭐 그리 어려운가 싶지만, 촬영은 한순간이 아니라 며칠에 걸쳐 데이터가 모집될뿐더러, 망원경의 컨디션과 날씨에 아주 예민하게 영향을 받는다.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인 것이다. 동시에 블랙홀이 가진 성질에 대해 연구하는 스티븐 호킹과 그들의 동료들의 이야기도 다룬다. 중력이 너무 강해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고 여겨진 블랙홀은 혼란 그 자체이다. 이전까지 과학자들은 블랙홀에 어떤 것이 빨려 들어가면 아무 정보도 저장하지 못한 채 그저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론은 물리학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해결해야 할 오류가 존재했다. 스티븐 호킹과 동료들은 이 오류를 설명하고 증명하려는 연구를 한다. 블랙홀의 경계선에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 존재하고 그 지평선 겉에는 벨벳같이 예민한 털들, 에너지의 흐름이 존재한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어떤 것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땐 그 겉의 보드라운 털에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을 연구하면 블랙홀이 빨아들인 물질들에 대한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  

나는 엔트로피 증가나 어둠물질에 대해 겉핥기 식으로 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쳐 답을 찾고 있다는 건 알겠다.



각자가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모두가 손뼉 치는 삶을 살든, 조용히 자기만족에서 멈추든 상관없다.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하다가 우린 모두 절멸할 것이고, 블랙홀만이 고요히 그리고 탐욕스럽게 자신을 키워나갈 것이다. 끝이 올 때까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