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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리고 에세이

자신만의 서사를 기록하는 일,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Freedom writers>

by 포포위 2023. 1. 16.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
23살의 초임 고교 교사인 에린 그루웰은 캘리포니아 소재 윌슨 고교에서 첫 수업을 시작한다. 그녀는 수업에서 학교주변의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자란 흑인, 동양계, 라틴계 등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과 만나게 되는데, 그들 모두는 하루 하루를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그들에게 매일 매일의 생각과 경험을 글로 쓰게끔 만들고, 이러한 글쓰기는 이들을 서서히 바꾸어간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를 괴롭히는 여러 장벽들에 부딪히게 되고 그런 그녀를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잡아주는 것은 변화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평점
9.2 (2007.01.01 개봉)
감독
리차드 라그라브네스
출연
힐러리 스웽크, 패트릭 뎀시, 스캇 글렌, 이멜다 스턴톤, 에이프릴 L. 헤르난데스, 마리오, 크리스틴 헤레라, 제클린 응안, 세르지오 몬탈보, 제이슨 핀, 딘스 와이어트, 바네타 스미스, 가브리엘 차바리아, 헌터 패리쉬, 안토니오 가르시아, 지오보니 사무엘스, 존 벤자민 히키, 로버트 위즈덤, 팻 캐롤, 윌 모레일즈, 아만드 존스, 리카르도 몰리나, 안젤라 알바라도, 안 투안 응유엔, 케이티 수, 리사 코헨, 브라이언 베넷, 호레이스 홀, 팀 할리간, 리자 배인스, 지젤 보닐라, 얼 윌리엄스, 블레이크 하이타워, 앤젤라 사전트, 로빈 스카이, 칠 콩, 후안 가르시아, 래리 칸

역사 속에 힘든 위기를 겪은 많은 사람들은 글을 썼다. 이순신 장군도 난중일기를 썼고, 안네 프랭크도 일기를 썼고, 남극 횡단을 위해 항해를 떠났던 영국의 선원들도 일기를 썼다고 한다. 하물며 자신의 위치에서 끊임없는 노력하는 운동선수들 중에도 기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타국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글쓰기를 취미로 갖게 되었다. 기록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우리가 매일 겪는 일이나 스트레스는 음성 언어로 발화될 수도 있다. 친구에게 전화로, 연인에게 하소연으로 내뱉어지고 그 순간 사라질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을 때 우린 괴롭고도 건설적인 세계에 발을 들인다. 도입 문장을 짓고, 문장과 문장을 잇는 접속사를 찾고, 그 상황에 딱 맞는 단어를 골라내고, 결론을 도출하는 동안 우리는 그 이야기에 대해 사색하게 된다. 이 일이 나에게 왜 속상했더라, 그래서 내가 느낀 감정은 정확히 무엇이더라, 다음에 이런 상황에선 무엇이 나은 선택일까, 한번 더 기억하고 고민하게 된다. 글을 쓰는 동안 하나의 이벤트는 구조와 서사를 갖게 된다. 이렇게 기록된 이야기는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가이드라인이 되곤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내 하루하루에 가치를 내리는 일이다.

‘오늘도 다른 날하고 똑같았다’라고 스러져버리는 시간에게 세상에 남아있으라고 가치를 주는 일이다.

나의 시간에 가치를 준다는 것은 결국 나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바라본다는 의미다.

 

영화 속의 선생님 Erin은 그 의미를 잘 이해한 것 같다. 1990년 대 초, 초임교사로 에린이 발령받은 학교는 캘리포니아의 윌슨 고등학교이다. 영화는 당시 LA에서 고조되던 인종 간의 갈등과 인종 차별에 대해 여과 없이 보여준다. 총을 바지춤에 숨기고 등교하는 아이들, 전자발찌를 찬 아이들, 라티노는 라티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아시안은 아시안끼리 어울린다. 수업이나 배움에는 전혀 관심도 없을뿐더러 교사와 같은 반 친구들에 대한 존중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전쟁터 같은 학교에서 초임교사 에린은 그저 무시하기 딱 좋은 영어 교사일 뿐이다. 하지만 에린은 여전히 교육이 가진 힘이 아이들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느 날 수업 중에 한 흑인 학생의 외모를 비하하는 그림 쪽지를 돌려보며 킥킥 거리는 아이들을 목격한 에린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예로 들어 경각심을 주고자 한다. 하지만 아이들 중에는 홀로코스트라는 말조차 처음 들어 본 학생들이 대다수이다. 에린은 교육 시스템 자체가 아이들을 인종으로 차별하고 교육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범죄와 가난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느낀다. 자신의 개인 시간까지 내어가며 아이들에게 더욱 생생하고 흥미로운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유대인 수용소 생존자들과 멋진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안네 프랭크를 도운 비서에게 편지를 써서 미국으로 초대하고, 박물관이나 전시회에 다니고 책을 선물한다. 아이들은 점차 마음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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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mount pictures

아이들이 마음을 열 때 쯤 에린은 노트를 한 권씩 선물한다.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 그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라도 써도 좋다고 한다. 각자가 쓴 글을 에린이 읽어주길 바란다면 교실 내의 캐비닛에 넣어두라는 말과 함께.

에린은 캐비넷에 쌓인 공책들을 보고 놀란다. 결국 이 아이들도 소통을 하고 싶었다. 보이진 않지만 자신들의 삶도 가치 있다고 외치고 싶은 것이었다. 아이들의 삶은 차별과 학대, 범죄로 마구 헝클어져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혼란과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방법을 모를 뿐이었다.

 

나도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교 수업처럼 긴 시간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지만, 그 짧은 수업을 하면서도 가끔은 기적 같은 교감이 일어나기도 한다. 언젠가 나도 14살 아이들의 그룹 수업을 맡은 적이 있다. 어찌나 협조를 안 해주는지 첫 며칠은 정말 벽 앞에서 춤을 추는 광대가 된 기분이었다. 찬찬히 아이들의 성향을 살피며 그에 맞는 속도로 수업을 했다. 그 당시 나 자신에게 자주 한 말은, 지식은 잊히면 또 배우면 되지만 태도와 감정은 오래 남는다, 였다. 아이들이 뒤돌면 까먹을 영어 단어나 문법을 가르치느라, 언어와 영어 수업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중에 한 여자 아이는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코웃음을 쳤다. 한 문장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면 표정을 찌푸린 채 프랑스어로 싫다고 대답했다. 나는 장난스레 ‘싫다’고 영어로 대답하면 패스해 주겠다고 했다. (프랑스어와 영어의 ‘No’는 거의 똑같다.) 아이는 귀찮다는 듯이 No 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게 시작이라고 여겼다. 나를 차차 받아들여준 아이들 덕분에 수업 마지막날 우린 함께 노래를 부르고 파티를 했다. 신나게 떠드는 아이들 틈으로 슬쩍 다가온 그 여자 아이가 한 말이 아직도 내 가슴을 뛰게 한다.

“ 여지껏 학교 수업이든 과외든 영어가 재밌다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선생님이랑 한 수업이 몇 년간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도 훨씬 재밌고 값져요. 감사합니다”

 

무언가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직업은 때로 이런 감동을 느끼다 보니, 허무맹랑해 보일지라도 희망과 기적을 놓을 수 없다. 에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문제아’가 아닌 ‘학생’들로 변모했다. 에린은 희망찬 기적을 목격한 것이다. 실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에린(Erin Gruwell)은 1960년대에 흑인들이 자유로이 버스를 타도록 시민운동을 벌인 인권운동단체 <Freedom Riders>의 이름을 오마쥬 해서 <Freedom writers>라는 이름으로 책을 낸다. 물론 이 책은 아이들이 필명으로 쓴 그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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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 writers의 실제 학생들과 Erin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가보자. 이 말썽만 피우던 ‘예비 범죄자들’에게 글쓰기는 무슨 의미였을까.

나는 그들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가 삶의 가치를 부여하기로 했고,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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