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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리고 에세이

하우스푸어 영끌족이 되기 전에 볼만한 영화 <노매드랜드>

by 포포위 2023. 2. 3.

30대 중반쯤 되니 너도나도 주변에선 내 집마련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이미 ‘영끌(영혼을 끌어모으기)’을 해서 집을 산 친구들도, 전세에 살면서 미래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하는 친구들도, 부모님과 살거나 월세에 살며 막막함을 토로하는 친구들도 있다. 한국에 살진 않지만 나도 최근 집을 샀다. 한국같이 집값이 비싸지 않아서 영혼을 끌어모은 수준은 아니다.  은행에게 한동안은 목돈을 꼬박꼬박 바쳐야 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노매드랜드
전 세계가 동행한 가슴 벅찬 여정, 길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삶도 계속된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열리는 새로운 길 그리고 희망  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홀로 남겨진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추억이 깃든 도시를 떠나 작은 밴과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의 세상으로 떠난다.그 곳에서 ‘펀’은 각자의 사연을 가진 노매드들을 만나게 되고,광활한 자연과 길 위에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그들과 만나고 헤어지며다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데…
평점
7.9 (2021.04.15 개봉)
감독
클로이 자오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린다 메이, 밥 웰스, 샬린 스완키, 데이비드 스트라탄, 캣 클리포드, 워렌 키이스, 피터 스피어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때에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다들 왜 그리 내 집 마련에 목숨을 걸까? 그냥 적당한 집에 월세를 내면서 맘 편히 살면 안 되나. 내 집이 결국 자기 재산이라고는 하지만, 몇십 년에 걸쳐 이자까지 포함한 돈을 내느라 허덕이느니 맘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않나. 특히 사업 실패로 ‘자가’로 가지고 있던 집을 하루아침에 잃은 가족을 보며 더더욱 내 집이라는 것이 환상 같은 짐짝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렇게 가벼이 산책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의문이기도 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을 자신은 없었지만 그러기도 싫었다. 사람이란 어찌나 이렇게 양가적인지. 어쨌든 집을 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투자’ 목적이나 ‘학군’, ‘교통’ 같은 것을 떠나서 정말 아득한 내 보금자리로 느껴져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곳의 어마무시한 ‘월세’가 사실상 은행에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금과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내집 마련’과 아주 동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가 하나 있다. 동료로 알게 된 사이인데, 처음에는 보트에 산다고 해서 놀랐다. 물론 내가 사는 곳은 섬이어서 보트에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친구가 말한 보트의 크기는 꽤 작았다. 그는 활짝 웃으며, 보트 주인에게 매달 20만 원을 주고 그 보트에 살고 있는데, 밤이면 별을 환히 볼 수 있고 아침에 해 뜨는 걸 보며 요가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큰 태풍이 지난 뒤 친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그가 내거는 주거 조건은 하나였다. ‘어떤 집이든 상관없으니 빈 집을 돌보는 대신 공짜로 묵게 해 달라.’ 이 거짓 같은 조건은 놀랍게도 꽤 잘 먹혔다. 친구는 긴 여행을 떠난 한 가족의 전원주택을 6개월 간 돌보며 그곳에서 공짜로! 살았다. 바다 전망에 커다란 수영장까지 있는 주택이었다. 6개월 후 그 친구는 다시 누군가의 빈 집을 지키며 공짜로 살았다. 매번 짐을 싸고 푸는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늘 행복했다. 그렇게 월세를 아껴 이번에 발리와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 친구를 보며, 누구나 한 번쯤 생각은 하지만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용기가 느껴졌다. 

 

노마드랜드의 주인공 펀은 캠핑밴에 살고 있다. 남편과 함께 살던 광산 마을이 폐쇄되어 다들 마을을 떠나고 남편은 암으로 죽었다. 그는 여기저기서 근근이 일하며 밴에 살지만 ‘정착’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동정을 거부하며 씩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펀이 있는 곳의 겨울은 혹독하고 일자리는 없었다. 우연히 캠핑장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의 조언대로 밥웰스라는 남자가 이끄는 노마드족 자조모임에 나가게 된 펀은 노매드의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듣게 된다. 모임에서 밴에 살아가기 위한 실질적인 팁도 서로 공유하고 물물교환도 한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펀은 마음이 복잡해진다. 모임이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밴을 끌고 떠나는데 펀과 한 여자만 남았다. 스왱키라는 여자는 뇌종양 때문에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고백하는데, 그 고백은 한스럽거나 처량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노매드로 산 덕분에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보아왔는지, 지구와 자연과 연결된 순간이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이 충분히 행복하고 멋졌다고 진심으로 털어놓는다. 스왱키의 솔직하고도 아름다운 고백 덕에 펀은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선다. 어떤 날은 고되고 어떤 날은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떤 날은 외롭고 어떤 날은 실컷 웃는다. 하루하루가 어떻든 간에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가 혼자라는 사실이다. 한 캠핑장에서 밥 웰스의 자조 모임에서 만난 사내를 다시 만나 가까이 지내는데, 나중에 이 남자가 펀에게 함께 정착해 살자는 듬직한 사랑 고백을 할 때도 펀은 다시 홀로 길을 떠난다. 마치 펀은 자유의 대가로 고독을 지불하는 듯하다.

하우스푸어로 사느니 자유로운 노마드의 삶이 낫지 않을까 고민하는 2030을 위한 영화 노마드랜드 리뷰입니다.
ⓒ21st century fox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도 물었다. 나는 안정과 평안을 위해 나 자신을 옮아맨 것인가? 자유를 지불한 걸까? 반대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오롯이 고독하고 고된 삶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펀을 보며 지금 인도에서 요가수행을 하는 그 친구도 떠올랐다. 그 친구도 지금 외로울까?

인생이 늘 그렇듯 흑백일 필요는 없다. 영화 초반부에 펀을 걱정하는 친구에게 펀이 말한다.

“I am not homeless, I am houseless.(나는 노숙자가 아니야. 집이 없을 뿐이야.)

집이 있든 없든 마음에 평안을 주는 공간 혹은 시간 또는 존재가 있으면 우리 누구도 홈리스는 아니다. 집이 있는 사람도 그 안에서 사랑과 안정을 느낄 수 없다면 홈리스가 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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